셰익스피어의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의 원작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말괄량이 길들이기"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어릴 적 만화가 곁들여진 세계명작 집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는 밥티스타와 그의 아름다운 두 딸이 등장합니다. 밥티스타의 첫째 딸 캐서린은 말괄량이로 소문이 났고, 둘째 딸 비앙카는 온순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쁘고 순한 비앙카에게는 구혼자들이 줄을 섰지만, 캐서린에게 구혼하는 남자가 없었습니다. 이에 고민하던 밥티스타는 첫째 딸 캐서린과 결혼하겠다는 남자가 생긴 후에야 둘째 딸을 구혼자와 결혼시키겠다고 공표했습니다. 그러자 페트루치오가 등장해 돈을 받고 캐서린을 길들이겠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캐서린과 결혼하는 대가로 밥티스타 소유 재산의 절반을 자신에게 물려주겠다는 각서를 받아내었습니다.
이후 페트루치오는 캐서린을 케이트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는 캐서린을 보고 꾀꼬리같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며 칭찬하고, 캐서린이 그의 따귀를 때리면 그 손에 키스를 하는 등의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케이트에게 청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캐서린 길들이기"는 결혼식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결혼식에 넝마를 입은 채로,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혼식 도중에 캐서린의 엉덩이를 걷어차거나, 그녀에게 "쪽" 소리가 나게끔 크게 키스했습니다. 또 그는 결혼식이 끝난 뒤 집으로 향하며 일부러 케이트 앞에서 죄 없는 하인들을 마구 야단치기도 했습니다. 그의 야단 때문에 캐서린은 집에 도착한 이후에도 캐서린은 음식, 옷, 모자 등을 마음대로 취할 수도 없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억지로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갖다 붙이며 그녀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캐서린은 이렇게나 괴팍한 페트루치오의 행동에 점차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이제 그가 말하는 것이라면 모든 맞다고 해주는 아내가 되어갑니다. 그녀는 페트루치오가 어떤 뚱딴지같은 말을 해도, 그에 동조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밥티스타와 페트루치오, 그리고 루첸티오(비앙카의 남편)가 모여 이야기를 나눌 일이 생겼습니다. 밥티스타는 페트루치오에게 말괄량이인 캐서린과 결혼해서 불쌍하다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셋이 각자 자신의 아내를 불러 가장 빨리 오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내기를 하자, 놀랍게도 캐서린이 가장 먼저 도착했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이러한 상황에 불평하는 비앙카와 미망인에게 아내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몸가짐에 대해 설교하면서 이 소설이 끝이 납니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양합니다. 첫 번째 시각은 캐서린을 순종적으로 "길들이는" 행위가 여성 비하적인 요소라는 의견입니다. 두 번째 시각은 페트루치오가 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비상식적인 일이어서, 이 작품이 여성을 길들이려는 의도 자체를 비꼬고 있다는 의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블랙코미디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 소설은 5대 희극으로 분류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코미디적 시각이 첫 번째 시각보다는 훨씬 우세하다고 판단됩니다. 세 번째 시각은 캐서린이 그동안 여성으로써 사회적 억압을 받으며 반항하다가, 페트루치오를 만나 그런 억압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긍정적인 해석입니다. 페트루치오가 캐서린에게 워낙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고 특이한 행동들을 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구혼자들과는 다르게 캐서린에게 순종적일 것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사랑을 원했습니다. 캐서린이 순종적인 여성이 된 것은 그녀의 자발적인 선택과 판단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이 둘은 그 어떤 부부보다도 이상적인 관계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현대에는 이 작품을 세 번째 시각에서 바라보며, 이 소설을 로맨틱 코미디의 시초로 보기도 합니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저는 처음에 이 영화의 제목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을 보고 너무나도 재미없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제목은 1990년대의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같았고, 저는 그래서 별로 기대감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제게 이 영화가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꼭 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여자 주인공인 캣(줄리아 스틸스)은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낭독합니다. 그녀는 쏟아지는 눈물을 훔쳐가며, "내가 널(패트릭을)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 대해 나열합니다. 캣은 패트릭(히스 레저)의 말도, 머리 모양도, 차를 모는 방식도, 그가 쳐다보는 것도 싫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그녀를 화나게 하는 것도 싫고, 그가 사실을 말해도 싫고 거짓을 말해도 싫다 말합니다. 심지어 그녀는 그가 자신을 웃기는 것도 싫지만 그가 자신을 울리는 건 더 싫다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이유" 보다는 "내가 널 싫어하는 이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속마음은 이제부터 드러납니다. 그녀는 그가 그녀의 곁에 없는 것도, 그녀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것도 싫다 말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싫은 건 그녀가 패트릭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 심지어 정말 아주 조금도, 전혀 싫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원래도 영화보면서 툭하면 울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정말 같이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캣의 자작시가 "애증"이라는 관계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녀가 표현한 것은 애증보다는 사랑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그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정말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만약에 당신이 연인을 너무 사랑하지만 당신이 너무나도 싫어하는 딱 한 가지 특성이 개선되지 않는다거나, 어떤 이유로 인해서 연인과 자주 싸우는 경우라면 더 공감할 법한 시 낭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연인뿐 아니라, 짝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매우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당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싫어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멈출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결국, "내가 널 사랑한다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을 싫어하지 못하는 당신 자신이 가장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이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감정 때문에 힘들어했음에도, 또 이 경험을 통해 사랑이 조건 없는 것임을 깨닫곤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사랑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고, 또 끊임없이 사랑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일 겁니다. 이 영화는 소설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원작보다 훨씬 현대적으로 각색해 큰 감동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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