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원작으로 한 일본 영화이다. 2021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으로 공개되어 호평을 받았다. 언론 평점이 3.5점으로, 경쟁부문 진출작 중에서는 가장 좋은 평을 받아서 국제 비평가 연맹상과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아사코"와 "해피 아워"라는 작품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연출했는데, 내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서였다. 봉준호 감독은 류스케 감독 및 이번 영화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최근 일본이나 아시아에 있어서 매우 희귀한 감독이다. 집요하게, 끈기 있게, 결코 초조해하지 않고, 착실하게 자신이 전달하려고 하는 곳에 다다른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런 괴물 같은 강인함을 갖추고 있다. 영화 '아사코'부터 이미 거장의 영역에 들어갔는데, 그 거장의 영역을 증명한 영화가 이번 '드라이브 마이 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그의 이전 작품인 "해피아워"는 무려 328분, 즉 러닝타임이 5시간 28분에 달하는 영화인데, 사람들이 그 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봤다는 평가들이 많았다. 그리고 영화의 주연들이 직업 배우가 아니라 일반인 배우들이었다고 한다. 비록 "해피 아워"를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흥미를 느꼈고, 이번 작품이 상영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번 영화를 보고 봉준호 감독이 평가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힘겨워하던 두 사람의 만남
TV와 영화 쪽 연출과 배우를 하던 남자 주인공 "가후쿠", 그리고 배우였던 아내 "오토"는 서로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부부이다. 이 부부는 과거에 4살 된 딸을 폐렴으로 잃어버리고, 가후쿠는 대중의 관심이 덜한 연극 무대로 자리를 옮겨 연출과 배우를 하며 지냈다. 아내 역시 배우를 그만두며 방황하다 딸의 죽음을 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토는 가후쿠와 성관계를 하면서 그녀가 구상하는 시나리오를 말하고, 이것을 들은 가후쿠가 내용을 기억해 다음날 오토에게 말해주는 독특한 방식으로 오토는 글을 써내려 갔다. 반대로 가후쿠는 연극 대사 연습을 위해, 차를 타고 다닐 때마다 아내가 녹음해준 테이프를 들었다. 이 테이프는 가후쿠가 대사를 하는 곳에서만 비어있었고, 나머지 대사들을 오토가 읽어주는 형식이었다. 신기하게도 테이프는 가후쿠의 대사 호흡에 딱 알맞게 녹음이 되어있었다. 이들은 점차 딸을 잃은 슬픔을 회복해 나가는 듯 했고, 서로가 가장 편안하고 잘 맞는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서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후쿠는 아내 오토가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다른 남자들(주로 작품의 남자 배우들)과 외도를 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가후쿠는 아내를 잃을까봐 이러한 사실을 모른척 해왔지만, 어느날 오토가 가후쿠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며 말을 꺼낸다. 그러나 그는 아내에게 말을 들으면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이 더 확고해질가봐 두려웠고,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는데, 아내는 이미 죽은 후였다. 그로부터 2년 후, 가후쿠는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되어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게 된다. 죽지 않았다면 자신의 딸과 나이가 같았을 미사키가 묵묵히 운전해주는 차 안에서 가후쿠는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를 연습한다. 조용한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의 내면 싶숙이 자리 잡은 슬픔을 들여다보게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
류스케 감독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잔뜩 안고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일들은 하나같이 거대했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매우 차분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특히나 가후쿠와 미사키가 눈밭에서 보여주는 대사들은,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주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가후쿠와 오토, 미사키와 미사키의 엄마, 이 네 명의 감정이 모두 이해되었다. 가후쿠는 아내를 잃을까봐 오토에게 화내거나 묻지 못했다. 오토는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빈 공간을 다른 방법으로 채웠다. 그러나 그녀는 한편으로는 가후쿠가 알아봐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가후쿠는 화를 냈어야 했다. 그가 모른 척 넘어가면 안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의 죽음은 남아있는 가후쿠에게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가후쿠와 미사키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먼저 간 사람들의 짐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가후쿠는 오토에게 도대체 왜 그랬는지 물어보지도 못한 채,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쓸쓸함을 안고 살아가야했다. 미사키는 엄마의 또 다른 인격이었던 어린 꼬마 아이와 함께 노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매일 그녀를 혼내기만 하는 엄마와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 꼬마와의 시간은 유일한 행복이었다. 미사키의 엄마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들이 있었기에 그 고통을 잊어내고자 새로운 인격을 가지게 되었고, 그 시간만큼은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후 미사키는 사고로 엄마를 잃었지만, 엄마를 살려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잊고자 평소의 자기와는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자신의 고통이나 결핍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할 때 나타나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을 하는 한켠에, 자신의 고통을 상대방이나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어떻게 보면 미사키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알았고, 그래서 꼬마와의 시간을 즐겁게 보낸 것 같다. 그녀는 엄마를 이해하기도 한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가후쿠는 그런 오토의 마음을 몰랐던 것 같고, 그것을 뒤늦게 후회하는 중인 것 같았다. 두 주인공은 아내와 엄마를 사랑했고, 그 마음에는 연민도 항상 함께 했기 때문에 후회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와 오래 함께하면, 그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마냥 화를 내거나 잘못에 대해 면밀히 따질 수가 없어진다. 그들은 상대방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하고, 불쌍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병들어가고 있는 상대의 마음을 모른척 하고 지나가는 것은 더 안좋은 일일 지도 모른다. 가족 간, 배우자 간에는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은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우리는 언제든 상대방의 마음과 행동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해야하며, 그 과정에서 두 명 모두가 상처받는다 하더라도 같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물론 주인공들이 했던 것처럼 모른척 하고 지나가는 것 역시도 많이 사랑해서, 상대를 잃을까봐 하는 일이지만, 그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그들 스스로도 지금 받은 상처에 비해 더 큰 상처를 입게 될까 두려워서인 마음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당신 곁의 사람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의문점을 가지고, 그 이유를 파악하고 싶어해야 관계가 건강한 상태로 오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두 주인공이 서로를 위로해 줌으로 인해 두 인물에게 변화가 생긴다.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의문, 분노 등 복잡한 감정들에 몰입하게 돼 자신의 배역을 더이상 할 수 없었던 가후쿠는 성공적으로 연극을 마쳤다. 그리고 아내와의 추억이 서린 소중한 공간이었던 차의 운전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일은 매우 어려웠지만, 이제는 마음 놓고 완전히 맡기는 것조차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드라이브 마이 카"였던 것 같다. 가후쿠가 아내에 대한 마음을 서서히 덜어내는 것이 그 차에 대한 집착을 덜어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미사키 역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면서 말이다.
어떤 리뷰에서는 오토와 헤어지는게 두려워 오토의 잘못을 눈 감았던 가후쿠의 후회와 반성을, 2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나라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전쟁 가해국의 국민임에도 피해국에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이를 애써 무시하고 살아온 일본 국민들의 죄책감에 빗대어 그린것 같기도 하다고 적혀있었다. 특히 이것은 가후쿠가 연출한 "바냐 아저씨"의 연출을 맡게되면서 다양한 국적인 배우들의 오디션을 보고, 대본 연습을 하고, 극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더 잘 나타나며, 특히 이 연극의 무대가 된 곳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라는 부분 역시도 감독의 의도가 담긴 설정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 영화의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없는 장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서로 다른 국적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같은 마음으로 느끼고 전개되는 연극이 너무 인상깊었는다. 연극을 보면서 나라나 언어와 상관없이 같은 상황에 처한 모두가 힘들게, 그렇지만 꿋꿋이 살아가고 있으니 모두가 그렇게 힘내자는 응원이라고만 느꼈는데, 저 리뷰를 읽고 나니 감독은 이 연극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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