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Anarchy)와 아나키즘(Anrchism)
드라마 "러브 앤 아나키"는 메인 예고편이 흥미로웠기에 별로 고민하지 않고 선택해서 재미있게 본 작품입니다. 그러나 드라마의 제목에 모르는 단어가 등장하니 조금 더 생소하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드라마를 보는 도중에도 아나키의 뜻을 찾아봤습니다. 그러나 아나키의 뜻에 대해 그때 당시에는 이해하고 넘어가는 듯했으나, 시간이 지나니 그 의미를 다시금 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나키의 뜻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찾아보고, 적어두려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래도 이 단어가 조금 더 기억이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나키(anarchy)는 그리스어 anarkhos에서 유래했습니다. anarkhos는 "~없이(without)"라는 뜻의 접두사 "an-"과 "지배자" 또는 "주인"의 뜻을 가진 "arkhos"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이 단어는 주인 혹은 지배자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지배자가 없는 상태를 말하기 때문에 흔히 "규칙이 있지 않은 혼돈의 상태"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보다는 지배하는 사람이나, 지배받는 사람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마땅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에서 파생된 아나키즘(anarchism) 역시도 단순하게 "무정부주의"로 오역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나키즘은 이런 의미보다는 "지배하는 사람이 없음" 혹은 "권력이 없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억압자는 정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국가, 자본, 종교, 도덕, 성, 인종, 나이 등 많은 것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처음 접한 스웨덴 드라마
우선 이 드라마는 배경지가 너무 예뻤습니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 모두 제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외모를 가져서 쉽게 눈을 끌었습니다. 러브 앤 아나키에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 "이다 엥볼"은 1985년생으로, 그녀는 삼십 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이 충만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옷이나 헤어 스타일링이 전반적으로 제 스타일이라서, 그녀가 매회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 모양을 했는지도 저에게는 되게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반면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비에른 모스텐은 1997년생의 모델이자 배우입니다. 그는 여자 주인공에 비해 많이 어린 편이고, 극 중에서도 연하의 역할로 나오기 때문에 젊고 상큼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검색 전에는 그가 이십 대 초반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나이는 그것보다 훨씬 많아서 놀랐습니다. 또한 그는 모델 출신이기 때문에 남자다운 피지컬을 뽐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남성미와 동시에 아이같이 해맑은 미소와 순수함을 지녔고, 여기에 미친놈 같은 짓들을 겸비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저는 스웨덴 드라마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보며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느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웨덴어의 목소리를 입 안으로 먹는 듯한 발음이 생소했지만, 그런 새로운 소리를 듣는 게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또 "Hej(헤이)"라는 말이 서로를 가볍게 부르며 인사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보다 보니 "안녕"임을 깨닫게 된 것도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드라마를 통해 본 스웨덴 회사 내부의 분위기도 우리나라의 회사 분위기와는 좀 달랐습니다. 어쩌면 출판사여서 조금 더 자유로운 회사 문화를 가진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회사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근무지보다 근무시간이나 기간이 훨씬 유연했으며 위계질서도 약한 편이었습니다. 회사 직원들 사이에 나이 차이가 있어도 친해지는데 무리가 없는 편이었고, 주인공들이 평소에 보이지 않던 이상한 태도를 보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라고 해도 도저히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등장했고, 그렇기 때문에 저 역시도 주인공들의 미션 해결 과정을 바라보며 함께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일상의 지침, 그리고 외로움
주인공인 "소피"는 출판사에 새로이 컨설턴트로 부임한 능력 있는 여성입니다. 출판사에는 새로운 혁신이 필요했고, 그동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았던 출판사를 변화시키기 위해 그녀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소피는 컨설턴트이자 동시에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워킹맘이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과 육아를 병해하는 것만 해도 힘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부부는 서로의 힘듦을 도닥여주며 하루하루의 힘듦을 토로하고 또 소소한 행복을 공유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소피는 남편과 가치관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항상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소피의 아버지와 관한 일도 있었습니다. 소피의 아버지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보내진 적이 있을 정도로 문제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와 소피는 서로를 사랑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소피 자신이 아버지와 닮아간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피는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자신의 아버지를 대하는 것처럼 자신을 대하게 될 것이라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위태로웠던 그녀의 아버지에게 위험한 일이 닥쳤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상의조차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남편이 그녀와 그녀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게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일상 속에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막스" 역시도 외로운 존재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동생들에게는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지만 막스는 인정해 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딱히 그를 도와준 적도 없으면서 막스를 골칫거리로 여기고 무시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를 이렇게 대했기 때문에, 그의 새아버지 역시도 어머니와 같은 태도로 그를 대했으며, 그는 이런 가족이 싫어서 혼자 나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집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비정규직 IT 기사였기 때문에, 직업적으로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는 혼자 보내는 시간에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리며 외로움을 달랬고, 딱히 의지할 곳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돌파구, 숨구멍
남녀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둘은 사실 처음엔 서로에게도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동안 날카로운 상태로 살아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반에 두 주인공은 서로에 대한 불만으로 충돌하는 듯했으나, 이들에게 우연히 벌어진 일이 계기가 되어 서로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게 됩니다. 이들은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일종의 미션들을 서로에게 부여했습니다. 이 둘은 미션을 수행하면서 미션을 하는 사람도, 그리고 보는 사람도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둘은 이러한 비밀스러운 과정을 공유하게 됐고, 그들은 점차 서로에게 돌파구가 되어주었으며,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힘겨웠던 각자의 삶에 "아나키" 즉, 남들은 모르는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자유"를 선물하면서 가까워졌습니다. 두 주인공은 결국 서로에게 사랑이자 자유를 함께 주는 러브 앤 아나키의 상대가 되었습니다. 둘은 서로에게 숨 쉴 구멍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 하는 일들을 함께했고, 그것도 심지어 몰래 했으니 그 감정이 정말로 특별했을 것입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유"라고 생각합니다. 공유하는 것이 각자의 마음 상태이든, 아니면 가치관과 생각이든, 아니면 힘든 일이나 기쁜 일이든, 우리는 무언가를 상배방과 함께 공유하고 털어놓을 수 있어야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아마 당신이 미혼이라면 당신에게 닥친 일들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방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당신이 기혼이더라도 배우자와 생각이 너무 달라 자신의 상황을 쉽게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관계가 시작되는 것 역시도 이러한 감정의 교류, 몸의 교류이며, 둘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 또한 이들의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교류가 불가능해지는 순간부터 인간은 혼자라고 생각하고, 외로움을 느끼며, 삶에 지쳐갑니다.
물론 부부가 몇십 년간 매일을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항상 새로움을 주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부부생활에서 새로움은 포기하더라도 꼭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파트너가 어떤 일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같이 살면서도 파트너에게 끊임없이 귀 기울이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탈출구, 혹은 숨구멍 하나쯤은 용인해주어야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파트너가 말하기 전까지, 파트너의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어느 정도는 "자유"로부터 여유 및 평화와 행복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는 꽤나 잘 아는 척하며 여러 말들을 적어보았지만, 사실 인생과 관계는 항상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게도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 말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러브 앤 아나키"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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