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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공허하고 희망 없는 삶

by morl 2022. 2. 12.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포스터

타이타닉 출연진의 재회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출연한 영화입니다. 사실 이들은 세계적인 명작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1997)"의 주인공과 같습니다. 이 영화는 이 둘이 타이타닉을 촬영 후 12년 뒤에 다시 만나 2009년도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주인공 둘에 더불어 캐시 베이츠 등의 당시 타이타닉 조연배우들 역시도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재출연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국내 개봉 당시, 타이타닉의 배우들이 다시 뭉친 영화라고 홍보했다고 합니다. 디카프리오와 윈슬렛은 연기도 너무 훌륭한 배우들이지만, 이런 역사적인 출연자 조합이라면 개봉 당시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개봉 당시에 제가 개봉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는데, 놀랍게도 이 영화의 존재조차 전혀 몰랐습니다. 어쩌면 개봉 당시의 저는 아직 대학교 1학년이었기 때문에,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생소해서 몰랐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아니고, 지극히도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국내에서 흥행을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 영화를 2020년도가 되어서야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정말로 깊이 감명받으며 관람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타이타닉의 팬들은 세기의 로맨스를 보여준 "잭"과 "로즈"가 어쩌다가 "사랑과 전쟁(파국으로 치닫는 결혼생활, 이혼 과정 등을 보여주는 한국 TV 프로그램)"을 찍게 되었냐며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30대이고, 또 기혼자입니다. 지금의 저는 20대나 미혼일 때보다는 다소 냉소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냉소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타이타닉이 명작임에도 동의하지만, 제게는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타이타닉보다도 훨씬 더 공감되는 주제로 다가왔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이 영화에는 한 부부가 등장합니다. 아름다운 여성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은 연기를 전공해 배우가 되고 싶었습니다. 훈훈한 남성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자유롭게 살고 싶단 꿈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이 둘은 어느 날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곧 둘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맨해튼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교외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사는 것은 처음엔 너무 멋져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이 동네는 적당히 한적했고, 덕분에 그들이 꽤 교양 있는 이웃들과 너무 가깝지도 또 너무 멀지도 않게 교류하면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당 딸린 집에서 두 아이들과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감에 부풀었던 것은 잠시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삶에 점점 지쳐만 갔고, 우울해졌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 보이는 "혁신적인 길" 위에 살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삶에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둘의 절망감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이러한 삶에 심한 우울감을 느끼던 에이프릴은 다시금 연극에 도전해 봅니다. 그러나 그녀의 실수로 인해 연극이 잘 되지 않았고, 이를 본 남편 프랭크는 진심이 담긴 위로가 아니라 그저 영혼 없는 위로를 해줍니다. 그녀는 연극을 망친 것도 슬펐지만 남편의 이런 심드렁한 반응에 더 화가 났고, 결국 이들은 크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삶에 지치기는 에이프릴 뿐만 아니라 프랭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와 같은 회사에서 30년간 일하셨음에도 회사에서 그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그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허무함을 느낍니다. 

  그러던 차에 에이프릴은 더 이상 이런 삶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예 새로운 도피처로의 도망을 선택합니다. 그녀는 프랭크에게 함께 파리로 떠나자고 말합니다. 그 곳에서 그녀 자신은 새로운 일을 시작해 돈을 벌고 싶습니다. 대신에 그녀의 남편 프랭크에게는 그에게 맞는 새로운 직업을 찾아 나설 기회를 찾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이런 결정은 결혼 이후 피폐해진 그들의 삶에 급속도로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곧 쓰러질 것만 같았던 에이프릴도, 그리고 회사의 한 부품이 된 것 같이 느껴졌던 프랭크에게도 새로운 꿈과 낭만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갑자기 프랭크의 회사에서 그를 승진시켜주겠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셋째를 임신하기까지 했습니다. 에이프릴은 셋째 아이를 포기하고 파리로 떠나 다시금 활기찬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프랭크는 셋째까지 임신한 마당에 연봉도 높여준다는데 지금의 집에서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합니다. 결국 이 두 부부의 갈등은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과연 이 부부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궁금해집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공허함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줄거리는 이 영화를 보게되었던 시기의 제가 특히나 더 공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결혼 2년 차였고, 평범한 러브스토리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혼 이후의 삶이 어떤지가 훨씬 더 궁금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기존의 제 직업에도 큰 회의감을 느끼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대학원 졸업 이후 약 2년 6개월 정도를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제가 이렇게까지 스스로의 몸과 정신을 해쳐가며 일하려고 그동안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 건가 싶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의 저는 나중에 커서 남들이 일하는 것보다 조금 더 편하게, 덜 일하고 더 많이 돈 벌려고 노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가 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에도 흥미를 잃어갔고, 딱히 무언가 새로 시작하고 싶은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에이프릴과 프랭크에게 너무나도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부부처럼,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보다 앞으로의 희망이 없는 삶에 더 좌절을 겪습니다. 제가 딱 그러한 시기였습니다. 저는 어떠한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앞으로의 인생을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에이프릴의 상황에 너무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 속 그녀는 처음엔 우울하고 좌절했지만 금세 파리로 향하는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활기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 버리자 그녀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 살아가는 느낌 자체를 잊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꼈고, 삶을 포기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와 배우 케이트 윈슬렛이 이러한 절망적인 감정의 변화를 너무나도 섬세하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녀의 연기력에 다시 한번 더 놀랐으며, 동시에 이 영화에 훨씬 깊이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아마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도 별 감흥이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에이프릴과 유사한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눈과 표정 및 대사에서 그녀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배우가 이러한 감정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전달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너무나도 우울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위로받았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부부 역시도 저와 이런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 부부 외의 다른 등장인물들도 모두 하나같이 자신들의 삶이 공허하다는 사실에는 확실하게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부부처럼 극단적이고 혁신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은 "레볼루셔너리 로드" 위에 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에이프릴과 프랭크의 계획이 실패했을 때,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비교적 덜 불행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 모두는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에는 절망감을 느끼고, 또 어느 순간에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런 작은 사실에도 위로를 받으면서, 서로를 다독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이 부부처럼 극단적인 탈출구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리고 탈출구를 찾았다 하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활 속에서 조금씩 이룰 수 있는 소소한 행복거리들, 작은 쉼터들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자칫 주인공들과 같이 우울함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오히려 이 영화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삶에서 공허함을 한 번쯤 느낀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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