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수다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포스터에 "본격 수다 블로버스터"라는 슬로건이 있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궁금했는데, 이 드라마를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왜 이런 말을 붙였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저 많은 대사를 도대체 어떻게 외우고 연기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방대한 양의 대사가 나온다. 그래서 배우 천우희를 왜 주인공으로 내세웠는지도 확실히 알겠다. 그녀는 상대역의 배우에게도 많이 말하지만, 그 외에도 혼자 생각하는 내용의 대사들을 수도 없이 내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배우의 목소리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서 듣기에 편안해야 할 것이고, 너무 감정이나 애교가 섞이지 않은 차분한 말투를 가져야하며, 빠르고 많은 양의 말을 하기 때문에 딕션이 비교적 정확해야 한다. 그녀가 정말 딱인 배역이었다. 나는 원래 수다스러운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옆에서 다른 사람이 유튜브를 틀어놓는 것도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특별히 관심 없는 주제의 경우에는 그 수다스러운 말들이 "정보"가 아니라, "소음 공해"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대사가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듣다보면 공감되는 내용들이 많아서인지 특유의 그 수다스러움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오히려 주인공이 되게 별생각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거나 말하는 척 툭툭 내뱉고 지나가기 때문에, 내가 놓쳐서 아쉬운 내용들이 있을 정도이다. 오죽하면 드라마 대본집을 사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로 주인공인 임진주(천우희)가 말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다큐멘터리 감독인 이은정(전여빈)과 그녀의 남자 친구 "홍대" 사이의 대사나, 은정과 친구이자 연예인인 이소민 사이의 대사에서도 꽤 공감이 되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장르가 멜로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냥 인생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이다. 멜로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별 기대 없이, 집안일할 때 틀어둘 용으로 시작한 드라마인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아서 다시 봐도 좋을 것 같다고 느껴지는 드라마이다.
이 정도면 그들은 서른이 아니라 삼십대 중후반이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많이 들어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드라마인 건 알고 있었는데, 주인공들의 나이가 "서른"임을 강조하지는 않아서인지 서른 언저리의 나이에 있는 사람들을 겨냥하고 만들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서른이라는 나이에 되게 초점을 맞춰서 제작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뷰를 남기기 위해 포스터를 찾다 보니 "서른 되면 어른 될 줄 알았어?"라는 슬로건도 찾았다. 그렇게 보니 서른이 되기 한 달 전인 스물아홉 살 12월에 봤던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과 유사한 구조이다. 서른 살인 여자들 셋이 등장하고, 그중에 한 명은 아이 엄마이며, 셋의 성격은 많이 다른 편이지만 서로가 힘들 때 위로하고, 기쁠 때 함께 좋아해 주는 친구 사이이다. "겨우, 서른"을 볼 때에 정말 그들이 서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도 비슷했다. 그나마 중국의 상황은 잘 모르니까, 우리나라보다 사회생활을 더 빨리 시작할 수도 있겠다 싶었고 그러면 그런 전개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드라마에서조차 등장인물들은 서른이라는 나이에 비해 이미 너무 많이 성공했으며, 이미 너무 성숙하다. 아무래도 내가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우리나라 평균보다 사회생활이 늦었을 수는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주인공들이 이룬 것은 이미 대단하다. 그래서 궁금해져서 극본을 누가 담당했나 찾아봤더니, 영화감독, 각본가, 드라마 감독으로 유명한 이병헌 님(80년생, 41세)과 김하은 님(79년생, 42세)이었다. 역시 그들은 30대 초반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요즘은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을 빨라야 28살쯤에 시작한다(적어도 내 주변은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주인공들의 나이를 서른이 아닌 최소 서른다섯 쯤이라고는 해야 더 공감이 갈 것 같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는 되게 공감을 많이 했는데, 드라마를 끝내고 보니 내가 주인공들에 비해 너무 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점이 아쉽다.
멜로가 체질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인생 이야기도 많이 담고는 있지만, 한국 드라마인 만큼 당연히 로맨스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멜로"라는 말의 뜻이 궁금해졌다. 보통 우리는 "멜로"와 "로맨스"를 같은 의미로 많이 사용해서 나도 그냥 그 둘이 비슷한 뜻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멜로"에 대해 쓰려고 보니 둘이 다른 의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멜로"는 영어로는 melodrama이고, "사건의 변화가 심하고, 통속적인 흥미와 선정성이 있는 대중극"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8세기~19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음악이 혼합된 연극으로, 주제와 줄거리가 낭만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멜로는 주제가 낭만적인 경우가 있기는 많기는 했겠지만, 원래의 뜻은 로맨스와는 엄연히 다른 것 같다. 이 드라마에서는 등장인물 세 명의 인생이 모두 굴곡이 있고, 그렇기에 더 흥미가 느껴지고, 궁금해지기 때문에 세 등장인물 모두 "멜로가 체질"이 맞는 것 같다.
드라마에 수많은 대사들이 등장하는데, 다시 듣고 생각해보고 싶은 대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 대한 자세한 소감은 드라마를 한번 다시 돌려보고 남기려 한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라서 마음에 든다. 그냥 심심한 분들,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은 분들, 그리고 삼십 대인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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