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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정전, 상처 받은 그리고 상처 주는 사랑

by morl 2022. 2. 11.

영화 "아비정전" 포스터
영화 "아비정전" 포스터의 장국영

90년대 홍콩 영화의 아이콘, 왕가위 감독

  영화 "아비정전"은 왕가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그는 1958년 생으로, 지금은 63세가 되었습니다. 왕가위 감독은 홍콩을 넘어 전 세계에서 인정받았던, 90년대 영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검색해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그는 각본도 직접 집필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는 영화에서 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고독과 허무함 등을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그는 영화에서 주로 "스텝프린팅"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기법은 먼저 저속으로 촬영을 한 후에 1초당 24 프레임으로 찍힌 필름에서 프레임 수를 8 또는 16 등으로 줄인 후, 줄어든 프레임을 다시 반복적으로 복사해서 24 프레임으로 만드는 기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상에서는 동작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작이 오랜 시간 반복되면서 툭툭 끊기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영화에서 이 기법을 사용할 경우, 인물 또는 사물의 윤곽선과 빛 혹은 동작의 잔상이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법은 이미 뮤직비디오나 CF 등에서 쓰이고 있던 방법이긴 합니다. 하지만 왕가위 감독이 영화에 도입하면서 시간이라는 요소를 강조하고, 잔상을 남기는 듯한 예술로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그의 영화에는 내레이션이나 독백이 많이 등장하고, 대사들이 시적이며, 그의 배경음악 선정 능력 또한 탁월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은 이미 시간이 꽤 오래 지났지만, 시간이 흘러도 젊은 층에게 꾸준히 어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에게도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계획이 없고, 지나치게 촬영 기간을 길게 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배우들이 스케줄을 맞추기 어려워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1990년의 "아비정전", 1994년의 "중경상림", 1997년의 "춘광사설", 2000년의 "화양연화", 2013년의 "일대종사" 등이 있습니다. 저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다 놀랍게도 2007년에 발표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역시도 왕가위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영화의 내용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제가 힘들던 시기에 이 영화를 되게 감명 깊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드 로와 노라 존스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외국영화라서, 왕가위 감독 작품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했습니다.    

중화권 인기스타, 장국영

  장국영은 여러분도 익히 들어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배우입니다. 그의 이름은 표준 중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장궈룽", 영어 이름은 "레슬리 청"이라고도 합니다. 그는 1956년생으로, 2003년 향년 46세의 나이에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워낙 유명한 배우였기 때문에, 저는 그가 출중한 외모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뒤 우울증으로 짧게 생을 마감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장국영은 홍콩에서 가수로 처음 데뷔했습니다. 그는 가수로 데뷔한 뒤 약 6-7년 간의 무명생활을 거쳤습니다. 그는 이후에 새로운 소속사와 계약을 했고, 매일 밤무대 행사를 위해 고소공포증을 참아가며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실제로 장국영 본인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가 "가수로 성공하는 것"이며, 인텁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직업을 "가수"라고 답했을 만큼 음악에 중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탓인지 그는 가수로서도 탑을 찍었고, 비록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제로 중화권에서는 80-90년대의 가왕 3인방 안에 장국영을 꼽기도 합니다.

  그는 가수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배우 쪽에 데뷔를 했습니다. 이때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오우삼 감독이 그를 "영웅본색"에 캐스팅하였고, 이후 "천녀유혼"에도 출연하며 그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장국영이 영화 "천녀유혼"에서 왕조현과 키스를 하는 장면은 홍콩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키스신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에는 아직 없었던 가녀린 청년의 이미지로 여자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그를 따라한 청년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연기력과 인기에 비해 수상경력은 적은 편에 속합니다.

  장국영은 1990년에 은퇴 선언을 했다가 복귀하면서 주로 예술영화에 출연했고, 이렇게 왕가위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실제로 왕가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항상 장국영을 주연으로 생각하고 집필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 그의 성적 지향에 대한 논란이 항상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장국영 본인 스스로는 확실하게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 중에 확정 지어 대답한 적이 없고, 여배우들과의 스캔들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으나, 가까운 사이에서는 매우 친절해 "인격자"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여러 스캔들을 몰고 다니며 항상 주목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2003년 4월 1일, 돌연 당시 머물던 호텔 24층 객실에서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필 이 날이 만우절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비보를 믿지 않았는데, 그 후에 사람들은 이 소식이 사실임을 뒤늦게 알고 큰 충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그의 비보에 이어 팬 6명이 그를 따라 투신했고, 안타깝게도 그중 5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도 기억되고 있고 탑 배우로 인정받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다른 배우들에게 기대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홍콩 영화의 붐을 이끈 장본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비정전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아비정전"이란 제목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저는 "아비정전"이 단순하게 "화양연화"처럼 사자성어인 줄로만 알았으나, 사실은 "아비"라는 주인공이 살아온 일대기라는 뜻이었습니다. 아비는 어린 시절 친모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양어머니에게 입양되지만, 그녀는 여러 남자를 전전하며 지내며 그에게 애정을 쏟지 못합니다. 이러한 탓에 아비는 여자를 늘 갈구하고 쉽게 유혹하지만, 깊은 사랑으로의 발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여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합니다.

  영화 중 아비는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우리는 이미 1분을 함께했다며 달콤한 말을 쏟습니다. 그는 이런 말 한마디로 여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는 남자입니다. 저는 이 대사를 들으면서, 이렇게 느끼한 멘트를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장국영처럼 생긴 남자가 대뜸 이런 말을 한다면 정말 하루 종일 생각날 것만 같기도 했습니다. 사실 너무 우습게도, 저는 이 영화를 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 말에 설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바람둥이들의 특징이 바로 이런 느끼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에만 충실해서, 혹은 순간적인 이득만을 위해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국영 같이 생긴 인물이 저런 말까지 곁들이며 우리를 유혹한다면, 안 넘어갈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영화에 등장했던 또 다른 대사 중에 상대를 다 이해할 수 없음에도 상대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깊이 사랑하면, 기존에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이더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아비는 여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곤 했으나, 역설적이게 그 역시도 고독을 품은 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그녀들에게 전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비는 어릴 때 받았던 상처로 인해 어떤 여자에게도 정착하지 못했으며, 마음을 내어준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애꿎은 여자들에게 화풀이하면서 보냈고, 결국 허무하게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를 사랑했던 여자들은 이런 그의 삶을 이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녀들은 그가 아니라, 그를 이렇게 만든 상황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의 상처를 품어줄 수 있을거란 희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이 사라졌을 때 역시, 그녀들은 아비가 원래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여전히 그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사실 제 생각에 이런 사랑은 의지의 영역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연륜이 쌓이지 않는 이상 이런 사람을 쉽게 피할 순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이 또한 자신의 운명이고 팔자라 생각하면서 시간이 약이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겪으면서, 조금씩 더 성장해나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삶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실을 곧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편이 우리에게 더 좋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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