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의 갈등
그동안 기다려왔던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시즌 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 1 마지막에서, 에밀리는 결국 가브리엘을 향해 커져만 가던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고 그와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녀는 너무 황홀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가브리엘이 곧 파리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가브리엘은 파리에 다시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가브리엘과 헤어진 여자 친구인 카미유가 여전히 가브리엘에게 미련이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에밀리는 가브리엘을 향한 자신의 감정과, 친구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고민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에밀리와 달리, 전 여자친구인 카미유가 아닌 에밀리와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그가 에밀리와 만나고 싶어서 파리에 머무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밀리는 친구인 카미유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싫었고, 가브리엘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기로 정합니다. 그리고 참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그녀에게 가브리엘을 향한 감정이 남아있음에도 카미유와 가브리엘 사이에서 그들을 다시 연결시켜주고자 노력합니다.
동시에 그녀는 프랑스어 학원에서 만난 새로운 남자 엘피와 좋은 관계를 시작합니다. 그녀는 엘피와 만나면서 고민이 해결되고, 마음이 편해진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엘피를 가브리엘과 카미유에게도 소개하기도 하고, 엘피와의 관계를 점점 발전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엘피와 더 깊은 사이로 나아갈만한 끌림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아랫집에 사는 가브리엘과 계속 마주치게 됩니다. 그녀가 아직 그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정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녀는 마음속으론 끊임없이 갈등을 계속합니다.
시즌 1보다 다소 더 실망스러웠던 시즌 2
이전 포스팅에서도 설명했듯 저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시즌 1을 2020년도 11월에 시청했고, 시즌 2는 2021년도 12월에 시청했습니다. 앞선 글에 제가 당시 시즌 1을 보면서 이 드라마가 미국인과 프랑스인, 미국 문화와 프랑스 문화에 대해 다소 스테레오 타입을 심어주었다는 설명을 해두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는 이런 단점 외에도, 어린아이들의 드라마 같은 심심하고 진부한 전개를 보여준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줄거리를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진행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부족한 스토리 라인에도 불구하고 나름 시즌 1에서는 등장인물들의 패션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고, 파리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줄거리도 나름 모든 사람들이 겪고 고민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사용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시즌 2는 시즌 1보다도 실망스러운 전개를 보여주었습니다.
시즌 2가 매우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드라마에 보여지는 에밀리의 일상생활이 너무 일차원적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에밀리의 일상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직장생활이 주요 스토리로 등장하는데, 이게 너무 단순했습니다. 아무리 요즘 마케팅 회사들이 하는 일이 sns 관리, 오프닝 행사 관리, 광고 콘셉트 잡기 등과 관련이 깊기는 하겠지만, 시즌 1에 이어 변함없이 너무 인스타그램 홍보를 강조한 것 같아 보기가 좀 불편했습니다. 이러한 연출로 인해 10대들에게 마케팅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제가 시즌 1을 볼 때보다 인스타그램에 흥미를 많이 잃어서 더 그렇게 느낀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요즘엔 인스타그램 자체가 너무 가식적이고, 작위적인 매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업용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sns를 사용하는 것의 장점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시즌 1에서는 에밀리의 sns 활용 능력 외에도 그녀의 센스가 좀 더 부각되도록 여러 새로운 상황들과 클라이언트들과의 만남이 등장했습니다. 그녀가 문제 상황에서 어떻게 일을 해결하는지 등과 같은 새로운 면모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즌 2에서는 시즌 1을 뛰어넘는 새로움이랄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의 영업방식에는 변화가 없었으며, 그녀는 그냥 인맥이나 우연으로 모든 상황을 풀어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드라마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전개 같았고, 또 딱히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도 못했습니다.
둘째로 그렇다고 시즌 2가 에밀리의 직장 이야기보다 로맨스에 치중했느냐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었습니다. 시즌 2에서는 그녀와 엘피와의 만남을 새롭게 등장시키긴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은 이도 저도 정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렀고, 엘피와의 사이가 깊어지지도 못했습니다. 그녀는 카미유와 가브리엘 사이에 괜히 애매하게 껴서 가브리엘에게 다가가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카미유에게 솔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제 마음이 너무나도 답답한 데다, 식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아예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가볍게 즐기든지, 아니면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과 푹 빠지든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싱글로 일에 치중하든지 셋 중에 하나를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매우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저기 남자들에게 여지는 주고 다니면서,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이 제 눈에는 그냥 너무 어려 보였습니다. 그녀가 직장의 상부에 보고나 질문 없이 일처리를 하는 상황이나,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하는 연애 상황이나 둘 다 마찬가지로 너무 어리숙하게만 보였습니다.
물론 저라고 해서 에밀리보다 직업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제 감정을 제 스스로가 잘 알고 고민 없이 시원시원하게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 섬세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를 포함하여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정말로 깊이 고민하는 장면들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녀가 제대로 된 선택을 못할 것이라면, 그녀의 감정 상태라도 잘 보여줘야 드라마에 공감이 될 텐데 이 드라마에는 그런 장면이 없었습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2는 그냥 파리라는 예쁜 도시에서의 젊고 예쁜 여자의 삶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여주는 드라마 같아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프랑스 및 파리의 패션
그래도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이목을 끄는 것은 바로 패션이었습니다. 패션의 측면에서는 시즌 1에서도, 시즌 2에서도 정말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우선 에밀리처럼 날씬하고 마른 여자가 입는 크롭 티와, 미니스커트의 매치는 너무 상큼하고 발랄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에밀리의 착의를 보는 내내 저도 20대에 저런 스타일을 많이 입어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다만 그녀의 패션은 패턴이 조금 과한 면이 있기는 했습니다. 제가 평소에 더 좋아하는 스타일은 프랑스인들의 패션이었습니다. 에밀리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그녀의 상사나, 친구로 등장하는 카미유의 옷들은 에밀리의 옷보다 훨씬 심플하고 깔끔한 색이었으나 라인이나 포인트를 통해 과감함을 주거나 섹시한 자태를 뽐내었습니다.
실제로 파리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본거지이고, 패션계의 거장들을 숱하게 배출한 곳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파리에 거주 중인 분의 글을 찾아보니, 학교와 직장이 위치한 8구 지역에선 사람들이 화려하게 입고 다니지만 18구나 19구에 가면 각 나라별 전통의상을 다 구경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글쓴이의 생각으로는 서울이 파리보다 더 유행에 민감하며, 파리의 유행은 서울보다 1년이 늦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 파리지앵들은 화려한 차림보다는 헝클어진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그리고 레드 립과 올블랙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마저도 제 스타일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요즘 화장은 안 하고 간단하게 립 틴트만 바르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똑같은 검은 옷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깔끔한 색상 혹은 라인이면서도 독특한 포인트가 하나씩 있는 옷들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들의 취향이 제 취향과 잘 맞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튼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 시리즈는 스토리나 작품성은 기대할 수 없는 드라마지만, 시각적으로는 꽤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옷을 좋아한다면 이 드라마를 한 번쯤 보아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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