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던 해프닝
2021년도 연말, 영화 스파이더맨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이 예매를 해두었다. 스파이더맨이 워낙 인기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집 근처의 영화관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보게 되었다. 우리는 처음 가보는 곳이라 낯설기 때문인지 아니면 약속 장소에 조금씩 늦게 도착하는 습관 탓인지, 조금 늦게 영화관에 도착했다. 우리가 조금 늦게 도착하기는 했지만 아직 광고를 하고 있을 시간이기도 했고, 영화관의 한 층당 관람관이 한 개씩이어서 관람관까지의 이동 시간이 길지 않았기에 비교적 시간 맞춰 도착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 이쯤이면 영화가 시작할 시간이 되었는데 싶은데 계속 광고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우리는 문득, 영화 예매표를 다시 보았고, 확인해보니 우리는 예매한 것과 다른 층의 다른 관으로 관람을 하러 왔단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우리가 예매했던 영화는 이미 시작했을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당시 그곳에서 옮겨서 다른 관으로 이동하는 것도 귀찮아서 우리는 그냥 그대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낄낄대며 웃었고, 이 역시도 우리가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기분이 좋았고, 과연 우리가 보게 될 영화는 어떤 것일지 잔뜩 기대하며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영화가 시작하니 제목이 등장했고, 기존의 킹스맨 시리즈들은 모두 재미있게 봐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나쁘지 않을 거란 기대감이 들었다.
킹스맨 시리즈
킹스맨(Kingsman)은 첩보 기관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스코틀랜드 출신 만화가 마크 밀러가 2012년에 출간한 "더 시크릿 서비스"를 영화한 작품으로, 이 만화 이후에도 2017년에 속편 만화 "킹스맨: 더 빅 엑시트", 2018년에 "킹스맨: 더 레드 다이아몬드"가 출시되었다. 영화로는 2015년에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처음으로 개봉했고, 당시 한국에서 꽤 흥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우산을 펼치며 킹스맨의 등장인물들을 따라 했고, 킹스맨의 명대사였던 "Manner makes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은 이곳저곳에서 패러디되었다. 이때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멋진 슈트를 입고 등장하는 덕분에, 남자들이 자신의 몸에 깔끔하게 잘 맞춰 입은 양복이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리고 슈트 곳곳에서 싸움용 장비 혹은 생존용 장비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제 많은 논의를 했던 장소인 맞춤 양복점 역시도 너무 신비하고,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실제로 영화 킹스맨에 영향을 받아 국내에선 침체되어있던 맞춤 양복(비스포크) 시장이 활기를 얻었고, 남성 패션 잡화까지 매출이 동반 상승했다고도 한다. 이후 2017년에는 "킹스맨: 골든 서클"이 개봉했다. 양복과 관련해 1편만큼의 감동은 없었지만 여전히 멋있었고, 새로운 소재가 등장해서 스토리도 나름 재미있었고, 마지막에 악당 처치 장면들을 잔인하게 표현하지 않고 희화화하여 표현한 것이 큰 임팩트가 있었다. 이번에 개봉된 신작 킹스맨:퍼스트 에이전트는 원작 시리즈에는 없는 작품으로, 감독인 매튜 본이 직접 쓴 오리지널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 내에 제정 러시아를 몰락시킨 요승 라스 푸틴과, 1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며 활동했던 마타하리 같은 실존 인물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실화를 기반으로 상상을 가미해 시나리오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다소 실망스러운 전개
옥스퍼드 공작은 아들인 콘래드가 어릴 적, 전쟁에서 아내를 잃었다. 이후 콘래드가 성인이 될 때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협할 전쟁을 모의한 악당 조직에 의해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 전쟁이 얼마나 많은 죽음과 희생을 불러일으키는지 잘 알고 있는 옥스퍼드 공작은 전쟁을 막으려는 편에 선다. 옥스퍼드 공작은 자신 역시도 전쟁에 참여하지 않지만, 아들인 콘래드 역시도 참전하지 못하도록 갖은 힘을 쓴다. 그러나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것이 애국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콘래드는, 자기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고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어 한다. 결국 옥스퍼드 공작은 자신이 비밀리에 운영 중인 독립 정보기관인 킹스맨에 콘래드를 소개하고, 악당 조직과의 한 판을 벌이게 된다.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고 느낀 콘래드는 무언가 더 큰 일을 해내고 싶고, 결국 아버지를 속여 전쟁터로 떠난다. 이로 인해 아버지인 옥스퍼드 역시 전쟁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과연 이 전쟁은 어떻게 끝이 날까?
1편과 2편이 너무나도 재밌었던 반면에, 3편 "퍼스트 에이전트"는 정말로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1, 2편의 킹스맨은 양장점에 가서 멋진 양복을 입고, 양복의 곳곳에 숨겨진 특수장비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3편에서는 그런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기대하고 있던 장면이 나오지 않으니 실망감이 컸다. 그게 킹스맨 시리즈만의 독보적인 장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토리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아니 저게 대체 뭔지 싶은 장면들도 많았고, 개연성도 부족했다. 콘래드의 참전과 희생이 이 영화에서 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악당 세력이 명분이 부족한 모의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자연스럽지 못했다. 수장이 부하들에게 뭐라도 챙겨줘야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 함께 모의를 작당하고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을 텐데, 수장이 그들에게 챙겨주는 것 없이 협박하고 죽이기만 하는데 도대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나라의 일들이 한꺼번에 전개되기 때문에 장면들도 너무 중구난방이고, 전반적인 스토리와의 연관성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심지어 싸우는 씬들도 너무 재미가 없다. 그 재미없는 씬이 심지어 시간마저 길어서, 그 지루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유머 역시도 우리나라 유머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것인지, 웃기지도 않는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너무 재미없는 영화였는데, 찾아보니 이번 작품은 감독이 직접 썼다 하여 그 이유가 납득이 갔다. 이번 신작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기존 시리즈와는 너무 대조되는 영화였다. 나는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실망감만 잔뜩 안고 돌아와서 너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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